‘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라는 뜻으로, 사람의 인품이 글씨에 그대로 나타남을 의미하는 말이다. 지난 3월, 오랜 세월 한국 전통 서예 발전과 후학 양성 등에 힘써 온 이화자 서예가가 무려 55년을 묵향과 벗 삼아 지내오며 완성한 자신의 필체를 김포시에 기부했다. 그처럼 유려하고 강건한 그의 글씨는 곧 ‘지당감성서예체’라는 폰트로 제작돼 김포의 도시 이미지 향상에 멋과 가치를 더할 예정이다. 글. 김미현 사진. 박시홍
Q. 서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여초 김응현 선생의 제자로 출발해 서예가의 길을 걸은 기간만 따지면 55년이지만, 사실 서예를 처음 시작한 건 그보다 훨씬 전이에요. 어려서 연필 쥐는 것도 힘들어할 만큼 몸이 약해 아버지가 뭐라도 써보라고 손에 붓을 감아주셨는데, 그렇게 조금씩 붓을 가지고 놀다 보니 서예도 재밌고 손에 힘도 생겨 계속하게 됐죠. 돌아보면 평생 서예만 하며 살았지만, 서예를 하면서 잃은 것은 없고 얻은 것만 있는 것 같아요.
Q. 서예의 매력을 꼽는다면. 서예는 오지(五指)를 움직이게 하고, 서서 쓰거나 앉아서 쓰거나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해요. 그래서 오장육부가 튼튼해지죠. 연필도 못 쥐고, 업혀서 학교에 가야 할 정도로 약했던 제가 이렇게 나이 70세가 넘도록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도 서예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또 어려서부터 서예를 통해 한자를 익히면 집중력과 어휘력을 높일 수 있어요. 특히 한자는 학교나 가정에서 꼭 가르쳤으면 좋겠어요. 우리 한글은 70%가 한자로 이뤄졌기 때문에 한자만 알아도 어휘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거든요.
Q. 김포시에 재능기부를 결심한 이유.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김포시민으로서 시의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게 돼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깝지 않으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는데, 이 정도 나이가 되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니 작품을 팔아서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것보다 제가 가진 재능으로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좋고 행복하더라고요. 그동안 제 필체가 필요할 때마다 직접 써드리는 게 쉽지만은 않았는데, 이제 폰트로 제작돼 전 덕분에 더 편해지게 됐어요.(웃음)
Q. 현재 폰트 제작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아직은 초기 단계예요. 한글 초기의 인쇄체인 ‘판본체 (板本體)’와 편지 형식으로 된 ‘서간체(書簡體)’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할 예정인데, 각 서체가 가진 고유의 느낌과 특징을 폰트에 녹여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Q. 평소 작품 활동을 하실 때는 어떤 서체를 선호하시나요?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 (草書) 모두를 두루 사용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는 서체는 예서예요. 지당 이화자 하면 ‘예서 전문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죠. 다른 서체는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쓰는 것 같아요. 기분이 좋을 때는 행서를 주로 쓰고, 선물할 작품을 작업할 때나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해서를 주로 사용합니다.
Q. 경기도도민상, 김포문화상, 경기도 여성상, 눌재 문화상 등 그동안 많은 수상을 하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상이 있다면. 2007년에 받은 김포문화상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 한참 지역 후학 양성에 애를 많이 쓰고 있었는데 그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았거든요. 상을 받기 위해 서예를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할 때마다 상이 따라오니 너무 좋더라고요. 상뿐만 아니라 17번 떨어졌던 국전에서 초대작가가 되고, 여성 최초 국전 심사위원장이 됐을 때는 눈물까지 났어요. 사실 서예에는 선비 정신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 여성이 중심에 서 있는 일이 거의 없는데, 저는 (사)한국서가협회 초대작가이자 원로 자문위원, 문양공 눌재 양성지 선생을 모시는 김포 대포서원 최초의 여성 원장까지 역임했으니 정말 운(?)이 좋았죠.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김포시와의 폰트 작업이 마무리되면, 미국에서 대학 명예교수로 있는 친구와 제 필체를 활용한 또 다른 폰트 작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친구가 미국에서 한글 연구를 하고 있는데,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거든요. 곧 시집도 출간 예정입니다.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해 고서에 있는 시서화(詩書畵)를 자주 봐서인지 언제부턴가 저도 시적 영감이 떠오르더라고요. 처음에는 ‘서예가가 현대시를 써도 될까?’하는 생각이 들어 망설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용기가 생겨 이번에 출간을 결심했습니다. 전시는 내년 11월쯤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전시를 마지막으로 지금 하는 대외적인 활동을 대부분 정리하고 남은 삶은 봉사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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