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내가 심하게 넘어져 시신경을 다쳤어요. 병원을 6년쯤 다녔는데, 하루는 의사가 그만 오라는 거예요. 왜냐고 물으니, 아내의 눈이 더 이상 안 보일 거라고 하더군요. 그다음 날 아내가 다니던 학교에 가서 대신 사표를 냈어요.”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덕포진교육박물관 김동선 관장은 천직을 내려놓아야 했던 아내의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을지 짐작했으리라.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덤덤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표를 낸 뒤 아내가 자꾸 ‘나는 이제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학생들을 만나게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했죠.” 1996년, 그 약속은 마침내 현실이 됐다. 퇴직금에 집까지 팔아 덕포진교육박물관을 설립한 것이다. 아내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언젠가 꼭 교육박물관을 설립하겠다는 꿈을 꾸며 오랜 세월 자료를 수집했던 김동선 관장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애틋한 이야기는 1층 로비에 있는 ‘무지개 스토리’에 전시돼 있다. 무지개색 중 검정 부분은 ‘절망 속에 어두운 나날을 보내던 중…’을 표현한 것이다. 스토리 아래에는 김동선 관장의 제자가 시인으로 등단하며 지은 <어느 선생님의 순애보 사랑>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눈먼 아내여 걱정 마오 / 내가 당신의 눈이 되어 줄게 / 당신 눈물 흘리지 마오 / 당신은 은쟁반에 톡톡 물방울 튀듯 / 낭랑한 목소리가 어울린다오 / (…) / 사랑하는 아내여 / 당신이 행복하다면 내가 뭘 더 바라겠소 / 당신은 영원한 3학년 2반 선생님 / 이승에서 당신과의 인연 / 세상 끝날 날까지 감사하며 살겠소.
드라마 <폭싹속았수다>의 양관식과 오애순을 떠올리게 하는 김동선·이인숙 관장
1층 로비 안쪽에는 1960~70년대 교실을 닮은 공간도 있다. 입구에 3학년 2반이라고 적혀있는데, 이는 아내 이인숙 관장이 학교를 그만두기 전 담임하던 학급이다. 이곳은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꼽힌다. 녹색 페인트가 칠해진 오래된 책상과 의자, 난로 위에 탑을 쌓듯 올려놓은 양은 도시락, ㄱ자로 꺾인 난로 연통, 소복이 담긴 조개탄, 빛바랜 교훈과 급훈, 낡은 교탁과 풍금까지 그야말로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해묵은 소품들이 교실에 가득하다. 한참을 과거의 시간에 빠져 추억을 들춰보고 있을 때쯤 ‘땡땡땡’ 종이 울렸다. 그리고 보글보글하게 파마머리를 한 이인숙 관장이 익숙한 솜씨로 공간을 더듬으며 풍금 앞에 앉더니 반주와 함께 동요를 불렀다. 이인숙 관장의 목소리는 시인 제자의 표현처럼 은쟁반에 톡톡 물방울이 튀듯 맑고 낭랑했다. 노래가 끝나고 그는 관람객들에게 희망과 열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메시지를 전했다. 절망에서 희망을 건져 올린 장본인인 그의 메시지는 짧지만 강렬했다. 실제로 메시지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이, 힘과 용기를 얻었다는 이, 삶의 이유를 깨달았다는 이도 많다고 한다. 덕포진교육박물관을 다녀간 이들이 이 수업을 가리켜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힐링 수업’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수업이 끝난 뒤 박물관 이곳저곳을 더 둘러봤다. 1층은 낯익은 교과서와 참고서를 볼 수 있는 교육사료관, 2층은 1990년대 대중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X세대 모이세요’ 기획전시관, 3층은 우리 민족의 농경사회 모습과 조상들의 근면성,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농경문화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우리나라의 교육, 전통문화 관련 자료가 층마다 빼곡히 전시돼 있는데 전시물이 1만여 점에 달한다고 한다. 수집광이었던 김동선 관장이 트럭을 타고 전국을 누빈 결과물들이다. 곳곳을 둘러보다 문득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떠올랐다. 1940~50년대생 부모님들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기까지 인생 전반을 사계절에 맞춰 감성적으로 풀어낸 이 드라마의 내용과 두 관장이 살아온 세월이 궤를 같이하는 것 같았다. 사랑과 감사의 날이 넘치는 5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이 직접 썼던 손때 묻은 물건들을 보며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아이들 에게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선물하는 덕포진 교육박물관으로 함께 떠나보자.
덕포진교육박물관 주소 김포시 대곶면 덕포진로 103번길 90 문의 031-989-8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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