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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평안의 쉼터 국가등록문화유산 김포성당

김포마루 | 기사입력 2024/10/31 [08:20]

도심 속 평안의 쉼터 국가등록문화유산 김포성당

김포마루 | 입력 : 2024/10/31 [08:20]

1956년 12월, 김포 북변리 도당산에 십자가가 우뚝 세워졌다. 1955년부터 1년 남짓 신자들이 직접 돌을 캐고 날라 지은 김포성당이다. 장애인은 물론 지역민을 사랑과 봉사로 섬김으로써 성당의 참된 가치를 전하는 이곳은 신자에게는 믿음과 은총이, 일반인에게는 도심 속 힐링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공간 공감>은 김포의 아름다운 건축물 또는 장소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희망이 없던 시절 소망을 꽃피우다

김포시 북변동은 옛 김포군청의 북쪽에 있 는 마을이란 뜻으로 ‘북녘말’이라고 불렀다. 또 ‘뒷마을’이라고도 했는데 북(北)이 ‘뒤’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북변동은 서쪽의 가현산(214.9m)과 남동쪽의 장릉산(150.3m)을 제외하면 대체로 구릉지에 해당한다. 그 가운데 북변동 북쪽에 예부터 도당제를 지냈다는 도당산(45m)이 있다. 과거 이곳 정상부에 오르면 계양천 뒤로 지역민들이 ‘홍두평’이라 부르는 홍도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강과 맞닿은 이 들녘에선 해마다 소출이 넉넉했다. 그런데도 민초들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김포는 철저한 수탈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나라마저 풍전등화에 놓여 있던 1900년경, 김포읍 걸포리 34번지에 행주 본당 걸포리 공소가 설립됐다. 공소란 보통의 성당과 달리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순회하는 천주교 건축물이다. 희망이 없던 시절 천국을 향한 소망은 공소의 발전과 신자 수 증가로 꽃을 피웠다. 해방 직후인 1946년 걸포리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됐으며 초대 주임으로 김병호 베네딕토 신부가 부임했다. 그는 늘어나는 신자를 수용하기 위해서 새 성당 터를 마련하고, 1949년 본당 이름을 김포 본당으로 고쳤다. 이어 1950년 초 사제관을 김포읍으로 이전하면서 본격적인 성당 신축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해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공사는 무기한 중단되고 말았다. 

전쟁 참여국들의 휴전 논의가 한창이던 1952년, 제2대 주임으로 김피득 베드로 신부가 부임했다. 그는 현재의 본당이 자리한 도당산에 목조 성당을 급한 대로 먼저 짓고 인근 땅 8,900㎡를 추가로 매입한 후 김포읍을 중심으로 포교에 나섰다. 하지만 김피득 신부는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1954년 11월 세상을 먼저 등졌다.

제3대 주임 신인식 루카 신부가 부임한 것은 1955년 5월이었다.

그는 신자들과 함께 성당 건축에 온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전쟁 직후인 탓에 건설장비와 자재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자 신자들이 손발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남성 신자들은 인근 산에서 돌을 캐 날랐고, 여성 신자들은 삽과 곡괭이로 땅을 일구거나 근처 계양천에서 물을 길어 날랐다. 그나마 마송에 주둔해 있던 해병대의 장비 지원 덕분에 공사는 1956년 12월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신자들은 이를 두고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말한다.

 

1. 주출입구에 있는 첨두형 아치
2. 다양한 건축 양식이 절충된 김포성당

 

인간과 신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김포성당 

김포성당은 한국전쟁 이후 건축된 석조 성당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화강암을 조적한 벽체다. 화강암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건축자재로서 단단하고 빛깔이 아름답다. 특히 연마하지 않은 화강암은 거친 질감에서 강인함이 느껴진다. 이런 화강암의 특징은 어렵고 힘든 시기를 살았던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보호를 간절히 바라는 믿음의 표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김포성당은 전체적으로 고딕 양식에 따라 건축됐다. 높이를 강조한 첨탑과 출입구는 물론이고 첨두형 아치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창호를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전형적인 라틴십자가 형태를 띤 평면도 그렇다. 또 아래로 내려올수록 벽체가 두꺼워지는 것도 고딕 양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돔은 르네상스 양식을 보는 듯하다. 화강암 사각 탑 위에 둥근 작은 기둥을 둘러 세우고 그 위에 돔을 설치했다. 내부 공간 역시 기둥이 없어 정통 고딕 양식으로 보기 어렵다. 줄지어 늘어선 기둥의 경건함과 엄숙함, 형식미보다는 탁 트인 강당 형태의 구조다. 

다소 밋밋한 느낌이지만, 아마도 부족한 자재로 짧은 기간에 군대의 도움을 받아 짓다 보니 미적 요소는 생략하고 기능에 치중한 결과로 보인다. 이런 유형을 ‘양식변형 양옥성당’이라고 한다.

 

3. 김포성당은 기둥이 없는 강당형이다
4.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빛이 예수상을 밝히고 있다

 

실내는 조명을 밝히지 않아도 그리 어둡지 않다.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내부 공간을 환하게 밝히기 때문이다. 오후 서너 시쯤 되면 서쪽 아치창에서 스테인드글라스가 신비로운 색을 발한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표현돼 있다. 그 아래에 신자가 앉는 원목 장의자가 여럿 이어져 있다. 제단 벽 상단 둥근 창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돼 신비감을 더하고, 그 아래에 열두 사도 조형물이 있는 감실이 자리한다. 제단 벽을 따라가면 신자 좌석을 내려다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조각상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두 조각상 모두 자애로운 표정이 가득하다.

성당 밖으로 나와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소나무가 우거졌다. 이곳에 예수님이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까지 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의 중요한 열네 장면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성경에서 산은 하느님을 믿는 그의 백성이 하느님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로 묘사된다. 그런 점에서 김포성당이 도당산에 터를 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소나무들 사이로 김포성당과 1999년에 신축한 성당이 어우러진다. 김포성당은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5.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의 길이 나와있는 김포성당의 안내도

 

김포성당

주소 김포시 북변로 29-12

문의 031-983-8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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