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가볍게, 먹거리로 2022년 한 해를 시작해보자. 김포에서 ‘웅어’라 불리는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다. 조선시대 임금 밥상에 올리기 위해 특별히 귀한대접을 받은 녀석이다. 웅어는 갈대숲에 산란하는 습성이 있어서 갈대 위(葦) 자를 써 ‘위어’라고도 불렸다. 조선시대 임금의 식사와 대궐 안의 식자재 공급일을 관장한 사옹원(司饔院)이 있었는데, ‘위어소(葦漁所)’라는 부속기구를 두고 녀석을 전담케 했을 정도로 특별했다. 지금은 흔치 않은 물고기지만 아는 이들은 그 맛을 첫 손에 꼽는다. 돌아오는 봄, 대명항이나 전류리 어판장에서 혹시 녀석을 만나면 주저 없이 지갑을 열어봄직하다. 글 황인문 시민기자 도움말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정현채 김포시사 편찬위원
‘의리를 아는 물고기?’ 이름도 많네 웅어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을 가졌다. 논산, 강경, 군산, 부여, 익산, 나주 등 서해바다와 접한 지역에서 잡혔는데, 지방에 따라 우어, 우여, 위어, 깨나리, 차나리, 의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몸길이 20~30cm의 얄상한 생김에 은백색 빛깔이 칼과 비슷한 모양이어서 ‘도어’로 칭했으며, 조선시대 약학사전격인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는 제어, 열어, 멸도 등으로 기록됐다. 어린 웅어는 ‘모롱이’로 불린다. 수많은 녀석의 이름에는 모두 사연이 있겠으나, 재미있는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의어’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 소정방이 웅어를 맛보려 했으나 부하들이 한 마리도 잡아오지 못하자 ‘고기마저 의리를 지키려고 모두 사라졌구나’라고 말한 데서 ‘의(義)어’, ‘충(忠)어’라 불렸다는 사연이다. 사옹원은 한양과 가까운 한강하구 일대에 위어소를 두고 웅어 어획을 관리했는데, 특히 통진현 쪽에 가장 많은 어부 80호를 배정했다는기록이 있다. 김포는 매우 중요한 웅어 어장이었던 셈이다. ‘감착관’이라는 사옹원 소속 관리들이 웅어가 회귀하기 전부터 어부들을 닦달하고 잡은 고기를 궁궐로 빼내가기 바빴다 하니, 고생한 어부들은그 맛을 보기 어려웠다.
새벽 안개 헤치고 ‘웅어사려~’ 웅어는 청어목 멸치과에 속한다. 바다에 살다가 봄이면 갈대가 많은하구로 올라와 알을 낳고 가을이면 바다로 내려가 겨울을 난다. 성질이 워낙 급해 멸치나 갈치처럼 그물에 잡혀 육지에 올라오는 즉시 죽는다. 60년대까지만 해도 갈대숲이 발달한 전호리 섶골나루와 풍곡리 돌방구지, 행주나루 일대에서 웅어잡이가 성했다. 냉동기술이 없었던 당시엔 볏짚으로 상자를 만들고, 상수리 나뭇잎으로 웅어를 감싸 지게에 짊어졌다. 빨리 상하기 때문에 시장이 열리길 기다릴 새도 없었다. 새벽 안개 자욱한 마을을 헤치고 “웅어사려~” 외치는 상인의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웅어는 주로 회로 먹는데,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후 뼈째 먹거나 밴댕이처럼 미나리 등 채소와 양념을 버무려 먹기도 한다. 4월에서 5월 초까지가 제철이다. 특히 단오 무렵 강어귀로 올라오다 잡힌 웅어는 뼈가 연하고 고소하다. 씹을수록 달콤한 맛이 풍미를 더한다. <본초강목>에 따르면 맛이 달고 기운이 따뜻해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약으로도 쓰였다. 예부터 보리 모가지 피기 전에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이 시기가 지나면 뼈가 억세지고 독특한 향도 사라진다.
옛 책에 기록된 김포 수산물 이왕 웅어에 대해 알아봤으니 김포에서 나는 수산물도 같이 살펴보자.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김포현과 통진현에는 숭어, 민어, 굴, 미네굴(土花:갯벌에 사는 굴), 쌀새우 등이 났다. 특히 조강은 황대구로 유명했는데, 배를 갈라 소금을 치지 않고 말린대구를 말한다. 선덕(宣德) 때 명나라 사신이 황제의 명으로 구해갔다고 기록됐다. 또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들 수산물 외에도 민어, 게, 청해(靑蟹:톱날꽃게), 부레(鰾:악상어), 뱅어, 낙지, 진어(眞魚:준치), 황어(黃魚:잉어류), 붕어, 농어, 오징어, 조기, 호독어(好獨魚:꼴뚜기), 중하(中蝦:중간 크기의 새우), 곤쟁이(紫蝦) 등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염전도 두 곳이 있었다. 어촌 풍경도 삶도 바뀌었다. 철조망에 가로막힌 나루에선 옛 황포돛배를 볼 수 없다. 마트 어물전에선 먼바다에서, 심지어 해외에서건너온 값어치 있는 물고기들이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세월따라 변해왔다. 물속 세상도, 물 밖 세상도 바뀌었지만 달큰한 웅어향은 여전히 기억 속을 맴돈다. 다가오는 봄엔 김포 물밑 맛을 찾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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