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시설인 ‘산성(山城)’. 산성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양상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로 사용돼 가치 있는 유산이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중부 이남 지역에 1,200여 개 산성 터가 남아 있다. 그중 우리시에는 문수산‧태산‧수안산‧장릉산 등에 산성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문수산성을 제외한 곳은 그 흔적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에 김포마루 <우리동네 옛날이야기>에서는 이들 산성의 흔적을 살피는 작업을 해 보았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양상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 첫 번째로 지난 6월 문수산성 소개에 이어 7월에는 ‘동성산성’을, 그리고 이번 8월은 대곶면 율생리에 있는 ‘수안산성’을 소개한다.
수안산성(守安山城)은 경기도기념물 제159호로 김포시 대곶면 율생리 산 117번지 일대에 있다. 수안산성이 있는 ‘수안산(燧安山)’이라는 명칭은 정상부에 조선시대의 봉화대(봉수대)가 있어 이름 붙여진 것으로, 수안산성(守安山城)을 수안산성(燧安山城)이라고도 칭한다.
산성 안에 봉수터가 남아 있는데 남쪽으로는 백석산 봉수와 서남쪽 바다 건너 강화 대모산 봉수와 응했다는 기록과 강화도와 마주 보며 바다를 향한 남서쪽 건물터가 모여 있고, 왕래가 가능한 포구가 성 바로 아래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조선시대까지 이용됐다.
산성의 둘레는 578.5m로, 성벽은 남벽 일부에서만 확인되고 있지만, 북측은 성곽의 돌로 추정되는 돌이 사면에 잔존하고 있다는 것과 지표조사 시 남측면 성벽 기저부가 짧은 구간이 확인되면서 남측면 성벽이 잔존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 기대감이 앞선다.
2020년 김포 관방유적 조사팀은 "문수산성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에 대한 조사가 시급하고, 이를 발굴해 보존해야 할 것"을 신신당부한 바 있다. 이유인즉슨 문지로 추정되는 부분에 성벽에 뒷채음 석재들이 단면상에 노출돼 이대로 방치된다면 붕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란다. 참고로 현재 게이트볼장에서 산성 쪽으로 올라가는 부분이 문지 부분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군부대 벙커와 교통호 등이 아직 남아 있어 과거 이곳 또한 동성산성과 함께 군에 의해 일부 파괴한 후 다시 조성되었음을 가늠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현재 발견되는 유물이나 쌓는 방법으로 보아 이 성은 신라 진흥왕 대 한강 하류 지역을 장악하고 쌓은 성이라고 판단되며, 통일신라 시대까지 서해안 지역을 방어하는 중요한 성으로 기능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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