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에 따르면 현재 중부 이남 지역에 1,200여 개 산성 터가 남아 있다. 그중 우리시에는 문수산‧태산‧수안산‧장릉산 등에 산성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문수산성을 제외한 곳은 그 흔적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에 우리동네 옛날이야기에서는 이들 산성의 흔적을 살피는 작업을 해 보았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양상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 첫 번째는 현존하는 문수산성이다.
김포시 월곶면 문수산로 102-38에 있는 문수산성은 한남정맥 시작점이자 끝점인 문수산을 배경으로 한다. 지리상으로 살피면 월곶면 성동리와 포내리를 일대인데, 월곶면은 물론 하성면까지 아우르며 우리 김포를 대표하는 명산이다. 무엇보다 강화를 바라보고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소장하고 있는 「경기도 김포시 군사유적 지표조사」에 따르면 문수산성은 둘레가 6,201m, 면적 6만 4천 평으로 장대지, 무기고, 공해루, 선착장, 북문, 남문 등을 갖춘 대규모 산성임을 가늠할 수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에 대해서도 공해루지는 석재가 붕괴된 채 쌓여 있고, 남문지에는 조선 후기 기와편과 석재가 발견되었다고 해 발굴 유물을 통해 조선 후기에 축조되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장대지에서 삼국시대 기와편과 고배 등이 발견 점을 들어 이전에도 이곳에 산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우리의 세심한 관심과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또한 문수산성에 대한 성벽 조사와 성 내부에 대한 조사도 필요해 보이며 성벽을 쌓을 사용된 돌이 문수산에서 조달한 것인지,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것인지에 대한 조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여담이지만, 문수산성은 문수산 안에 있는 ‘문수사’라는 절이 있어 ‘문수산성’이라는 명칭이 붙여졌고 한다. 문수사는 신라 36대 왕인 혜공왕 재위 연도는 765년에서 780년으로 문수사는 이즈음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혜공왕 재위 끝 무렵 지어졌다 하더라도 약 1,237년 전이다.
이러한 역사적 근거로 문수사는 문수산성에 앞서 축조되었기에 문수산성이 문수사라는 절이 있어 붙여졌다는 여담을 여담으로 흘려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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