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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된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 시작점 ‘그날’을 기다리는 애기봉

김포마루 | 기사입력 2022/12/29 [01:24]

단절된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 시작점 ‘그날’을 기다리는 애기봉

김포마루 | 입력 : 2022/12/29 [01:24]

단절된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 시작점

‘그날’을 기다리는 애기봉

한가로이 풀을 뜯는 누렁이, 무언가 가득 담긴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가는 아낙, 논 사이로 쌓아올려진 볏단.

멀리 망원경 너머 보이는 풍경이 딱 옛날 우리 모습이다. 맑은 날엔 3km도 되지 않는 강 건너 마을 주민 모습

이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우리는 가깝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어우러져 바다로 향하는 조강(祖江)이 바로 아래 남과 북을 가로지르며 흘러가는 이곳, 애기봉이다.

글 황인문 시민기자 도움말 신효철 조강2리 주민, 박희정 김포들가락연구회 황금물결 대표

 

 

쑥갓머리, 외기봉 그리고 애기

애기봉(愛妓峰)은 월곶면 조강리와 하성면 가금리의 경계에 있다. 기생의 이름인 애기에서 유래됐다. 예부터 주민들이 지칭한 이름은 ‘쑥갓머리’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출전한 평안감사를 따랐던 애기, 도중에 평안감사가 청나라 군사들에게 잡혀가자 쑥갓머리에 올라 북녘 땅을 향해 임을 부르며 기다리다 결국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주민들은 이야기를 따라 외로운 기생이 죽은 곳이라는 뜻으로 ‘외기봉’이라 했다. 지금의 ‘애기봉’이라는 이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었다. 1966년 이곳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은 주민들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애기의 한(恨)은 강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우리 1천만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 하여 ‘애기봉’이란 친필휘호를 남겼다.

 

한순간 사라진, 75가구의 집과 마을

애기봉 자락을 끼고 풍요로웠던 포구마을인, 조강2리 아랫말 주민들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전쟁 당시 남과 북이 한눈에 들어오는 애기봉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남북 간 치열한 고지전이 펼쳐졌다. 인민군과 해병 5대대, 미8군에 터키군까지 마을을 들락거리며 주민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전선 2km 이내 주민들에게 강제 이주 명령이 떨어졌다. 급한 대로 탈곡해둔 쌀과 이불 보따리, 김장 김치 따위만 챙겨 친척집이나 이웃한 동네에서 피난민 신세를 져야 했다. 이듬해 봄,

다시 찾은 집은 모두 허물어져 흔적만 남아 있었다. 휴전 당시 소개명령으로 사라진 집이 75호에 이른다.

 

월곶의 중심 ‘아랫말’ 조강포 마을의 추억

전쟁 전 조강포 마을은 월곶의 중심 마을이었다. ‘조강강습소’라는 소학교가 있었는데 가금리(하성), 개곡리(월곶), 울안리(조강1리) 마을의 아이들까지 여기서 공부했다. 아이들은 포구의 물이 완전히 빠진 감물(간조) 때 나눗배로 강을 건너 풍덕리로 갔다. 평야지대였던 김포는 논이 대부분이었고 밭이 없었다. 삼이 유명했던 개풍군 풍덕리엔 참외며 오이,가지 따위가 흔해 서리해 먹으며 한참을 놀다 참물(만조) 때 다시 배를타고 조강포구로 건너왔다. 겨울철인 이맘 때 조강포구에선 장어잡이가 한창이었다. 문수산에서 아래로 부는 강한 바람을 ‘장단높새’라 했는데, 장단높새가 불고 너울이 세찰 때 한강에서 내려온 장어들이 굉아리(가장자리)에 몰려들었다. 10m 간격으로 깔때기 모양의 그물을 놓았는데 팔뚝만큼 크고 실한 녀석들이 잡혀 짭잘한 수입을 올렸다.

▲ 옛 기억을 살려 1945년 당시 마을 지도를 그린 신효철(90) 조강2리 주민 

 

실향민 마음 위로하는 평화의 공간

애기봉 건너 개풍군은 일제 해방 당시만 해도 엄연한 대한민국 영토였다. 그러나 6.25전쟁과 정전협정으로 개풍군은 졸지에 이북땅이 되고 말았다. 이에 개풍군은 대한민국 정부가 장래 수복할 지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공식 행정명칭도 ‘미수복경기도 개풍군’이다. ‘휴전선’은 개풍 주민들을 이남과 이북으로 갈라놓았다. 개풍군민과 이북5도민 등 김포에 살고 있는 2천여 가구, 1만여 명의 실향민들에

게 애기봉은 통일을 기다리는 애환의 땅이다. 정전 70주년을 훌쩍 넘겼다. 애기봉은 여전히 이별의 아픔이 계속되는 장소다. 한 해 10만 명이 넘는 실향민들이 북녘 땅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을 찾는다. 실향민들은 매년 명절 때마다 애기봉 망배단(望拜壇)에서 북쪽을 향해 제를 올리고 통일을 기원한다. 애기봉은 작년 10월 ‘애기봉생태평화공원’으로 새롭게 변모했다. 한반도 유일한 남·북 공동이용수역(Free-zone)에 위치해 평화를 상징하는 김포의 대표적인 장소다. 단절된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하루 빨리 녹슨 철책을 끊어내고, 애기봉 위로 떠오르는 평화의 해를 맞이할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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