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2월이다. 잰 걸음으로 달려온 한 해, 고갯마루에서 잠시 쉬어가자. 천등고개는 김포한강로가 열리기 전 서울 가는 길에 거쳐 가는 마지막 고개였다. 지금은 고개라고 하기 민망한 낮은구 릉에 불과하지만 예전엔 꽤나 험하고 깊었다. 서울에서 김포로 넘어가는 첫 번째 고개이자 김포시의 관문과도 같은 천등고개를 소개한다.
글 황인문 시민기자 도움말 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양 가는 마지막 고개 김포를 관통하는 48국도를 지나다 보면 ‘천등(天登)’이라는 이름 자체가 궁금증을 부른다. 고갯마루에 붙여진 예사롭지 않은 이름의 유래부터 살펴보자. 『해동지도』, 『광여도』, 『여지도』 등 옛 지도엔 이 고개가 천등산(天燈山)에 속한 천등현(天登峴)으로 기재되어 있다. 한양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 천등고개는 조선시대 김포와 강화 사람들이 한양에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다. 많은 사람이 오고 가며 잠시 머물렀 으니 이야깃거리 역시 구설로 이어졌겠다. 강화에서 농사짓던 원범(철종)이 한양에 갈 때 고개가 너무 높아 잠시 쉬었다 가자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았다 하여 ‘천둥고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 이곳의 가파른 지형 때문에 걷기 힘든 데다가 산적들이 자주 나타났다고 한다. 이를 물리치고 안전하게 고개를 넘으려면, 사람 천 명이필요하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도로 확장으로 키가 작아진 고갯마루 천등고개는 원래 이름에 걸맞게 하늘(天)을 찌를 듯 높이 솟은 가파른 산이었다. 향산 마을의 앞산이었고, 신곡 마을의 뒷산이었다. 소나무와 갈참나무 등 참나무 군락지였다. 고갯마루에 오르면 벌말, 평리,홍도 등 사방으로 드넓게 펼쳐진 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고갯마루를 가로지르는 48국도는 60년대까지만 해도 뿌연 흙먼지가 날리는 외길이었고 차선도 없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차량은 힘에 겨워보였고 양쪽에서 차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한 차가 길섶으로 양보해줘야 가까스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지금은 넓게 8차선까지 확장됐지만 90년대 초만 해도 왕복 2차로에 불과했다. 90년대 이후 최근까지확장공사가 이어지면서 도로가 넓어지는 것에 반비례해 천등고개는낮춰졌다.
그저 지나가는 버스정류장의 기억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50년대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민간인이이곳 천등고개에서 학살당했다. 이념을 앞세워 총을 겨누고 고갯마루에 피를 뿌렸다. 세월이 흘렀지만 고촌 토박이 주민들에겐 잊지 못할상처와 기억으로 남아있다. 수백 년을 이어오며 몸집을 키웠을 고갯마루는 고작 반세기 만에 옛 모습을 완전히 잃었다.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고갯마루에선 더 이상 평야도, 나무도, 하늘도 볼 수 없다. 등줄기식혀주던 바람도 머물지 않는다. 건조한 풍경 속에 장곡과 신곡 사이,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정점에 ‘천등고개’라는 버스정류장 이름만이 작은 호기심을 일으킨다. 세월의 흐름에 덧씌워지고 새롭게 변모하는 세상의 이치를 거스를 순 없다. 다만 사라지는 것에 대한 기억이자, 살아가는 것에 대한 되짚음이 때론 삶의 위안이 되진 않을까. 고갯마루에서 잠시 상념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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