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즐비한 산업단지에 자리한 미술관, 말만 들으면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한 땀 한 땀 옷을 짓듯, 성실하게 쌓여 온 시간이 녹아 있는 CICA 미술관을 마주하면 금세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설립자의 철학과 가치를 발견하며 예술적 영감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곳, 국내는 물론 해외 작가들의 다양한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CICA 미술관을 찾았다. 글·사진. 임운석
삭막한 산업단지에 예술의 꽃을 피워내다 현재 김포시 양촌읍 학운리 일대는 반듯반듯한 도로를 따라 공장들이 일정한 패턴으로, 마치 장난감 블록처럼 정리되어 있다. ‘이런 산업단지에 정말 미술관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으며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과 오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CICA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누가 이런 삭막한 산업단지에 미술관을 지었을까? 그 첫걸음은 조소와 조각으로 유명한 김종호 작가가 이곳에서 개인 작업실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철을 작품의 주재료로 사용하던 그는 철을 깎고 새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공간 부족 등의 문제로 늘 마음 편히 작업할 공간을 갈망해 왔다. 그러던 중 1994년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작업공간, 현재 CICA 미술관이 자리한 곳을 찾게 된 것이다. 김종호 작가는 곧바로 작업실을 손수 디자인해 지었고, 주변 경관과 조경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CICA 미술관의 볼거리 중 하나로 꼽히는, 사계절마다 다른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정원도 그가 직접 가꾸고 만든 것이다. 본격적으로 미술관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 뒤인 2006년, 작업실 옆에 전시동을 개관하면서부터다.
다채로운 공간과 작품이 호흡하는 곳 그래서일까? CICA 미술관의 건축물에는 설립자인 김종호 작가의 예술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종호 작가는 1980년대 국내 최초로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를 도입한 조각가로 유명하다. 파운드 오브제란, 원래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사물이나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재해석해, 예술 작품의 일부로 사용하거나 그 자체로 작품을 만드는 창작 과정을 말한다. 흥미롭게도, CICA 미술관 건축에도 이러한 파운드 오브제 기법이 적용됐다. 현재 이곳에는 잔디 정원을 캔버스 삼아 총 5동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각기 다른 건축자재가 활용됨은 물론 선과 면의 구성도 제각각 다른 개성을 뽐낸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공원과 마주한 건물은 ‘CICA 포럼’으로, 1층에는 레지던스 입주 작가를 위한 창작스튜디오가, 2층에는 CICA 미술관에서 기획·제작한 출판물 전시와 간단한 식음료를 즐길 수 있는 테이스트 바(2층)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이곳은 높은 층고와 전면 통창으로 이뤄져 있어 개방감이 뛰어나고, 넓은 정원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종종 다양한 콘퍼런스와 이벤트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미술관을 품은 야외 정원 곳곳도 아트 페스티벌 등 여러 행사가 수시로 진행돼 볼거리가 가득하다.
그 자체가 작품이 된 미술관 이뿐만이 아니다. CICA 미술관의 건축물들은 단순히 미술관의 기능을 넘어, 전시 작품과 함께 호흡하며 구조적 완성도를 높여간다. 여기에는 건축을 작품의 연장으로 여기는 김종호 작가의 철학이 담겼다. 실제로 그는 건물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허투루 여기지 않고 작품을 부각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김종호 전시실이 좋은 사례다. 김종호 전시실 출입문 맞은편은 천장에 난 삼각형 창을 통해 빛이 들어와 작품을 한층 입체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자연광을 이용한 이러한 전시는 변성이 적은 철을 소재로 한 작품에 특히 적합하다.
건물 내부 구조도 흥미롭다. 특히 비정형적인 관람 동선과 미로처럼 연결된 전시관, 다양한 형태의 창호, 지붕, 벽면, 계단 등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같은 특징은 CICA 미술관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자, 이곳을 찾는 이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데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 건축은 시간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건축 단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CICA 미술관의 건축적 행보는 기존 상식의 틀을 깨는 파격을 보여준다. 오랜 세월 동안 부족한 것을 채워가며 나름의 철학과 스타일, 역사를 만들어 온 CICA 미술관. 전 세계 5천여 명의 예술가와의 네트워크,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 국제전’ 진행과 출판물, 2017년부터 해마다 개최되는 ‘CICA 뉴미디어아트 컨퍼런스’ 등이 그 증거다. 주소 김포시 양촌읍 삼도로 196-30 문의 031-988-6363 운영시간 수~일 10:30~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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