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삶의 터전, 오일장 시장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스치는 모습들이 있다. 활기차게 북적이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흥정하는 사람들, 반가운 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좌판에 가지런히 진열된 상품들이 그것이다. 시장은 단순히 상품과 사람이 모인 곳만이 아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보를 교환하는 소통과 이야기의 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일장에서는 ‘5일’ 동안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들이 상품 보따리와 함께 풀어 헤쳐지고 그 이야기들은 장바구니에 옮겨 담긴다. 이처럼 우리네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시장은 오랜 세월 삶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김포장은 끝자리 2·7일에 열리는 오일장이다. 김포장을 북변장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장이 서는 지역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북변동은 옛 김포군청(전 김포경찰서)의 북쪽에 있는 마을로 북변리 또는 북녘말이라 불렀다. 현재 김포장은 북변공영주차장에서 열리고 있다. 설날을 며칠 앞두고 김포장을 찾았다. 한결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옷차림이 이전보다 훨씬 가볍다. 몸이 가벼운 만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다. 시장 한가운데에서 ‘뻥’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의 진원지를 향해 갈수록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역시 상상했던 뻥튀기였다. 그런데 어릴 때 본 것과 기계가 달랐다. 소음과 연기를 줄이기 위해 기계 앞에 사각 금속 틀을 덧대놓은 것이다. 뻥튀기 기계 주변엔 쌀, 옥수수 등 다양한 곡물들이 가지런히 줄을 서 있다. 그 덕분에 순번 대기표가 없어도, 따로 줄을 서지 않아도 괜찮았다. 뻥튀기 장수가 깡통에 든 옥수수를 기계에 넣은 뒤 버튼을 누르자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후 10분 정도 지났을까. 호루라기를 한번 불더니 연이어 뻥~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뻥튀기 장수 옆에는 강정 만드는 손길이 분주했다. 뻥튀기부터 강정까지 나름 원스톱 시스템을 갖췄다.
장터 구경도 식후경, 줄 서는 맛집 즐비 흔히 시장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어느 시장이든 주력 상품이 있기 마련이다. 김포장은 어패류를 비롯해 수산물과
청과류가 유난히 눈에 띈다. 하나같이 신선해 보인다. 비좁은 천막을 지나 북변공영주차장 아치문 방향으로 향했다. 의류와 각종 주방기계,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좌판이 이어졌다. 한편에는 오리와 닭을 팔기도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은 김포장에서도 통했다. 점심때가 되자 사람들이 먹거리를 판매하는 천막으로 향했다. 잔치국수, 칼국수, 국밥 등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들은 물론이고 숯불에 구운 등갈비, 메추리와 생선구이 등 술안주로 제격인 음식들도 많았다. 잔치국수와 등갈비를 먹는 아이가 눈에 띄었다. 아이가 학원을 마치자마자 바로 왔다는 가족은 장날마다 빠지지 않고 ‘출첵’한다며 웃었다. 등갈비집 옆에 긴 줄이 ‘갈지(之)’자 모양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줄을 따라가 봤더니 ‘ㅁ’자 형태로 테이블이 놓였고 그중앙에 한 남성이 음악에 맞춰 춤추며 칼국수를 썰고 있었다. 33년째 칼국수를 팔고 있다는 사장은 어머니를 도우며 장사를 배웠다고 했다. 그에게 어머니의 말씀은 잠언이었다. “밀가루 장사는 한 번 더 치대는 놈이 이긴다”, “장사하는 놈이 힘들면 손님이 드시기 좋고, 장사하는 놈이 편하면 손님들이 그 맛을 바로 안다”, “사람마다 양이 다른데 1인분을 담아 놓지 말라, 손님이 배고파 가면 그 집은 망한 거다”등 어머니가 전한 인생 말씀이 그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이틀동안 숙성시켜 만든 칼국수는 유난히 쫄깃했다
오랜 세월 시민과 함께한 김포성당 1월은 여러 가지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기 십상이다. 번잡한 일상 가운데 놓친 게 있다면 2월에 다시 시작해보면 어떨까. 김포장 가까운 곳에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고 차분히 성찰하기 좋은 곳이 있다. 천주교 인천교구 성체성지로 지정된 구 김포성당이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 넓은 주차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구 김포성당과 새 성당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주차장을 가로지르면 철쭉에 에워싸인 성모 마리아 동상이 있고 그 옆에 구 김포성당 가는 돌계단이 이어진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구 김포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포성당은 1910년 걸포리 공소로 시작하여 광복 이후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1946년 본당으로 승격됐고, 그 이듬해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현재 건물은 1955년 신원식 주임신부와 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다. 전후 당시 신자 대부분이 농민인 터라 번번한 건설장비는 엄두도 내지 못한 시절이다. 그러니 농사에 쓰던 농기구로 땅을 일구고 석재를 캐어 날랐다고 한다. 그나마 해병대의 장비 지원이 있었기에 1956년 12월 17일 봉헌식을 가질 수 있었다. 김포성당은 중앙상부의 종탑과 뾰족한 아치 창호가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인상적이다. 입구는 둥근 아치 형태이고 그 위에 종탑이 우뚝 서 있다. 종탑의 돔은 르네상스양식이지만, 전체적인 평면 양식은 고딕양식이다. 앞뒤가 길고 좌우에 그보다 짧게 돌출된 라틴십자가 형식을 띤 게 대표적이다. 또한, 화강석 조적 기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것은 1950년대 우리나라 성당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교회 건축은 서양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마련인데, 구 김포성당은 여러 양식을 결합함으로써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희망을 향해, 새로운 시작을 향해 성당 내부는 기둥이 없이 탁 트인 강당형이다. 외부와 달리 최근에 보수공사를 마무리해 산뜻한 분위기다. 그런데도 높은 천고로 인해 엄숙한 분위기가 실내에 감돌았다. 긴 나무 의자 수십 개가 정면 중앙을 향해 자리했다. 정면 좌우에는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 동상이 놓여 있고, 중앙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채 고개를 떨구었다. 내부에 조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좌우 측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은은한 빛이 내부를 형형색색 밝혔다. “우리는 희망을 통하여 하느님께 다가갑니다”라고 중앙에 크게 적혀 있는데 ‘희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남았다. 언제부터인가 희망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성당 밖 솔숲은 ‘십자가의 길’로 이어졌다. 이 길은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뒤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에 이르러 죽임당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보여주며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게 한다. 그래서 이 길을 ‘고난의 길’이라 부르기도 한다. 소나무숲에 조붓하게난 오솔길은 구 김포성당과 새 본당을 둘러싸듯 흘러간다. 오랜 세월한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사람의 기도를 들었을 소나무들이 간절함을 아는 듯 하늘로 향해 쭉쭉 뻗었다. 그 가운데 몇몇은 신자들의 기도 소리를 듣는 듯 가지를 늘어뜨려 하늘의 위로를 전하는 것 같다. 성당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마을 풍경과 재개발 현장까지 한눈에 담겼다. 문뜩 이런 생각이 스쳤다. “신과 인간의 영역은 공간의높낮이로 구분되는 게 아닐까”하는. 고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신의 영역에 들어와서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안식과 평화를 얻는다고 생각하니 종교를 떠나서 이 공간이 한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새롭게 시작될 2월에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다시 시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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