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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날이야기 … 김포의 유관순 ‘이살눔’을 아시나요?

양미희 시민기자 | 기사입력 2023/02/28 [15:45]

우리동네 옛날이야기 … 김포의 유관순 ‘이살눔’을 아시나요?

양미희 시민기자 | 입력 : 2023/02/28 [15:45]

 

 

▲ 김포의 유관순 열사 '이살눔'     ©

이살(1886.9.7.~1948.8.13.), 본명은 이경덕이다. 그는 현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출신으로 김포지역에서 유일한 성 독립운동가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김포의 유관순이라 부른다. 이살눔은 이화학당 재학 중 독립만세운동이 있던 1919년 고향으로 내려와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결의한 김포의 대표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살눔은 1919년 독립선언서 수십장을 옷 속에 감추고 고향인 군하리로 돌아와 각 면의 유지에게 비밀리에 배포했다. 선언서를 받은 성태영, 백일환, 박용희, 조남윤, 윤종근, 최복석 등은 각기 동지를 규합해 태극기를 만들고 의거할 것을 결의했다.

 

3.1 만세운동 스무하루 후인 1919322일 오후 2시 월곶면 군하리장터. 이살눔은 동지들과 함께 만든 태극기를 수백명에게 나눠주며 군중에 앞장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태극기를 휘두르며 맨발로 군중을 향해 독립만세 외침을 주도했다. 특히, 특히 김포 여성들에게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통진향교에서 시작한 월곶면 군하장터 만세운동으로 말하자면 4백여명이 면사무소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해 나갔다. 일본 경찰은 이살눔을 비롯한 만세 시위자들에게 해산할 것을 강요했으나 우리는 응하지 않았다. 역사는 300명으로 시작한 면사무소 만세 시위는 400명으로 확대됐다 전한다.

 

이 만세 시위는 함박산의 횃불시위로 이어졌다. 다음날인 2912시 최복석이 갈산리에서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을 외쳤고 갈산리에 모인 군중은 군하리장터로 행진하며 일본의 강제 점령에 항거했다.

 

여성 독립운동가 이살눔은 시위행진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옥고를 치르던 중 병을 얻은 이살눔은 가출옥으로 석방되었으나 알 수 없는 병으로 사망했다.

 

현재 월곶면 군하리에 그를 기리는 추모비가 한 종교단체에 의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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