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알려진 비경은 그 독특함을 자랑하며 동양의 신비를 가득 담고 있다. 특히 지역별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덟 군데의 경치를 ‘8경’으로 정해 알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관동팔경ㆍ단양팔경이 대표적이다.
우리 김포시 또한 팔경이 있었다. ‘있었다’라는 과거형 표현은 도시 재탄생과 군사보소시설 지역으로 지정된 탓에 여러 곳이 우리 곁에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우리동네 옛날이야기는 ‘김포팔경’에 대해 알아본다.
■ 1경, 걸포송림(傑浦松林) - 걸포의 소나무밭 한강따라 제방이 없던 시절 걸포동에는 소나무밭이 장관이었다. 지금은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그러했다, 나지막한 능선에는 큰 소나무가 빽빽했고 김포팔경 중 마지막에 등장하는 홍도평야의 갈대꽃과 나문재가 무성하여 절경을 이뤘다고 한다.
■ 2경, 감암귀범(甘岩歸帆) - 감암포의 돛단배 운양동 한강 하류에 있는 나루터 ‘감바위’. 옛 어른들은 이곳을 ‘감암’이라 불렸는데, 예로부터 김포지역의 관문으로 왕이 내왕하던 신성한 포구라는 의미로 ‘검포’라고도 했다. 여기서 김포의 지명이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설로는 중봉 조헌 선생은 이 바위에서 낚시를 즐겼다는 데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대감바위’라고도 했다. 이렇게 ‘감바위’ 또는 ‘감암’으로 전해졌다. 현재는 군사보호구역에 묶여민간인은 드나들 수 없지만, 그러면 어떨까. 전설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 3경, 가현산낙조(歌絃山落照) - 가현산 지는 해 4월, 가현산의 진달래는 상춘객을 매료시키기 충분하다. 이러한 가현산의 또 다른 매력은 낙조다. 저 멀리 김포와 강화를 갈라놓은 염하의 하류 물결과 영종대교 밑으로 흐르는 물결에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지상인지 천상인지 모를 정도다. 특히 손에 잡힐 듯 보이는 학운리 일대는 오래전 섬이었을 것 같은 능선 뒤로 지는 저녁 해는 부끄러운 듯 벌겋게 물들고 있다. 가현산의 지는 해는 우리가 흔히 보는 낙조 그 이상이다.
독도(獨島)는 필경 혼자 있는 섬이라는 의미인데 우리는 흔히 경상북도 울릉군에만 있다는 오류를 범한다. 이참에 우리 김포에도 독도가 있음을 꼭 알아두자. 김포 독도는 조강에서 시작하는 한강은 남으로 남으로 흐르다 다시 조강으로 향한다. 그러다 걸포동 근처 독도의 갈대밭에서 잠시 쉼을 청하니 이는 갈대꽃의 유혹 때문이다. 갈대는 사계절 흔들림 없이 이곳을 지나는 물결을 잡아두기도 하고, 이곳을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김포팔경 중 하나로 꼽혔나 보다.
장엄한 장릉산의 끝자락에 자리한 봉릉사. 지금은 이곳을 ‘금정사’라 불리는 이곳은 오래전 세계문화유산인 김포장릉을 보호하던 사찰이다. 장릉은 조선 16대 왕인 인조의 부모인 원종 정원군과 인헌왕후를 모신 곳으로 어느 문헌에는 ‘한 번의 타종 소리에 나를 깨우고, 두 번의 타종 소리에 나를 숙이며, 세 번의 타종 소리에 만물에 감사하게 되는 금정사의 종소리는 지금도 우리 귓가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라며 봉릉사의 종소리를 묘사하기도 했다. 여명과 함께 퍼지는 봉릉사의 종소리는 속세의 번뇌를 깨닫기 충분하다.
■ 6경, 영사정 망월(永思亭望月) - 영사정의 보름달 보름달은 음력으로 15일(보름) 밤에 뜨는 둥근 달을 의미한다. 이중 가장 밝은 달은 정월대보름과 한가위에 뜨는 달이다. 보름달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신곡리에 있는 영사정의 보름달은 클래스가 다르다. 영사정은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가 장릉으로 참배하러 가던 중 개화리에 당도해 남원의 묘를 보고 “주위의 경관과 경치가 아름다워 영원히 생각나겠다”하여 영사정이라 하사받아 불리게 되었다.
■ 7경, 운양포 추파(雲陽浦秋波) - 운양 나루의 가을 물결 김포는 고양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운양포는 한강 건너 고양에 있는 송포를 향해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고 있는 듯하다. 오래전 송포에서 떠난 돛단배는 바람을 등에 지고 돌아오는 길에 운양포의 가을 물결을 만났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잔잔하면서도 무섭게 치밀어 오르던 한강 물결은 오늘도 어김없이 운양포를 잊지 못해 찾는다.
■ 8경, 홍도평 낙안(鴻島坪落雁) - 홍도평의 기러기 떼 군무(群舞)는 역시 아이돌 그룹의 군무가 최고다. 하지만 홍도평에서 펼치던 기러기 떼의 군무를 보면 생각이 살짝 달라질 수도 있다. 우리 어르신들은 홍도평에서 떨어질 듯 말 듯 펼치는 기러기 떼의 군무를 보면 탄성이 절로 나왔다고 한다. 옛날, 지금의 제방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한강 물이 걸포리까지 드나들었는데, 이곳에 붉은 갯벌 식물이 많아 ‘붉을 홍(紅)’자를 써 홍도평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러기 떼의 장엄한 군무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이 늘어 명소가 되자 지명을 ‘기러기 홍(鴻)’자로 바꿨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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