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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독도, 김포한강 독도(獨島)가 지도 위에 되살아난다

김포역사문화연구소 조민재 소장 | 기사입력 2024/06/27 [00:19]

또 하나의 독도, 김포한강 독도(獨島)가 지도 위에 되살아난다

김포역사문화연구소 조민재 소장 | 입력 : 2024/06/27 [00:19]

2024년 김포 한강의 잊혀져 있던 작은 섬의 이름을 되찾았다.

바로 공식 지명화를 통해 ‘김포시 걸포동 423-19’이라는 행정지번까지 받은 독도다. 과거부터 독도라 불려왔던 이곳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 일러스트 청운     

 

김포시에서 일산대교를 통해 한강을 건너다보면 다리 오른쪽으로 섬인 듯 돌출되어 있는 형상이 퍼뜩 눈에 들어온다. 이 작은 섬은 16세기 이래로 여러 기록에 그 존재가 표기되어 왔지만, 오늘날엔 공식 명칭도 없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지 오래이다. 그런데 이 섬이 최근 2024년 5월 21일 경기도 지명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토지리정보원에 ‘독도(獨島)’라는 공식 명칭으로 등재가 결정되었다.

 

지난 1980년대 이래로 인구 5만의 고을이 50만의 신도시로 성장하게 된 것이 김포의 ‘빛’이라면, 이 과정에서 다수의 전통유산이 소멸된 것은 ‘그늘’이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독도의 명칭 등재는 향후 김포의 잊혀진 문화자원을 되살리는 좋은 계기가 될 듯하여 몹시 반갑다. 이는 민선8기 김포시가 근래 쉼 없이 노력을 기울여 얻은 소중한 결과물이다.

 

옛 김포반도를 둘러싼 3면의 강과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 수십 개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유도 · 부래도 · 백마도 외에는 대부분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중 오늘날 고양시와 경계가 되는 김포반도의 동북쪽 한강에는 오늘날 걸포동의 일산대교에서부터 고촌읍 신곡리의 김포대교 방향으로 독도 · 초평(草坪) 또는 조도(助島) · 이평(二坪) · 박말도(朴抹島) 등 네 개의 섬이 차례로 있었다. 19세까지의 여러 고지도와 김포군읍지에 뚜렷이 기록되어 있던 이들 섬 중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던 초평과 이평은 언젠가부터 한강에서 사라졌다. 나머지 두 섬 중 박말도는 백마도(白馬島)로 이름이 바뀌었고, ‘오염’ 또는 ‘형제섬’으로도 불렸던 독도는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로 무너진 한강 제방을 쌓느라 본래 모습을 잃고 초라하게 줄어들었다.

 

김포와 관련된 사적을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는 「금릉군지(金陵君誌, 1910)」에는 김포의 경승 8개를 꼽고 있는데, 이김포팔경 중 하나가 바로 ‘독도노화(獨島蘆花)’, 즉 ‘독도의 갈대꽃’이다. 이로 미루어 이 섬에는 갈대가 무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전의 독도는 서해 조수(潮水)의 영향으로 형체 일부가 드러났다 잠기곤 했지만, 한때는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았고 김포에서 고양 이산포로 가는 나룻배가 기착하는 나루터도 있었다 하니, 생각보다 제법 규모 있는 섬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김포 한강의 독도는 언제부터 어떤 명칭으로 기록되어 왔을까? 현재 우리나라 지역사 연구에 있어 소급할 수 있는 가장권위있는 종합지리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이다.

이 책의 김포현 조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도의 명칭은 고도(孤島)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등장하는 고도강(孤島江)은 양화나루의 하류, 즉 김포 쪽 한강을 부르는 별칭이었고, 이 고도강이란 명칭은 독도의 이전 이름인 고도에서 온것이기 때문이다. 고도나 독도는 모두 ‘외딴섬’을 뜻하는 한자어라서

오래도록 서로 통용되었다.

 

이 외딴섬이 독도로 명명된 최초의 기록은 1690년(숙종 29) 4월13일의 「승정원일기」 기록이다. 당시 한강 하류는 조수(潮水)의 영향으로 김포와 고양 쪽 강변의 개흙이 수십 년 주기로 한쪽에 쌓였다가 차츰 사라지고 맞은편 쪽으로 옮겨가곤 했다. 이 개흙토지에서 생산되는 수확량의 소유권을 두고 성균관과 왕실가가 서로 다투는 내용이 위 기록에 등장하는데, 그 범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김포 쪽 한강의 독도란 명칭이 기록된 것이다. 또한

1821년(순조 21) 5월 25일자의 「일성록」에는 고양군과 김포군 사이의 한강에서 세곡선이 침몰한 일로 고양군수가 의금부에 올린 진정서에 침몰 장소인 독도가 언급되어 있다.

 

이밖에도 전국 지방도가 다양하게 편찬된 18세기의 「해동지도」· 「여지도」· 「광여도」 · 「지승」 등을 비롯하여 19세기 말엽의 「1872년지방지도」와 「김포군읍지도성책(1899)」 등의 고지도에는 모두 김포한강의 이 작은 섬을 독도로 표시하고 있다.

 

이상의 역사적 근거자료를 통해서 보면, 독도는 처음에 고도로 이름지어졌다가 17세기 말엽부터 독도라고도 불리며 두 명칭이 함께 쓰였지만, 18세기부터는 독도가 공식적으로 보다 더 많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유서 깊은 외딴섬 독도의 존재가 무려 1백여 년 만에 다시 공식 명칭의 등재로 세상에 알려진다는 점에서, 2024년은 김포시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사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울릉도 옆 독도는, 그 존재 및 소속과 상관 없이, 명칭 자체는 1904년 이후에서야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김포 한강의 독도는 이미 1690년부터 국가 공식기록인 「승정원일기」에 등장한다는 사실이 실로 놀랍지않은가!

 

우리가 흔히 ‘도서지역’이라고 할 때의 ‘도서(島嶼)’가 ‘섬’을 뜻하는 것임은 상식적으로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좀더 세분하자면 ‘도(島)’는 비교적 큰 섬을 가리키고 ‘서(嶼)’는 아주 작은 섬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오늘날 김포시를 둘러싼 한강과 조강, 서해에는 과거에 수십 개의 ‘도서’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특히 지금은 인천시 서구로 편입된 옛 김포군 검단면 지역의 서해바다 쪽에는 간척사업으로 사라진 1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었다. 이 또한 오랜 세월 김포 역사의 일부분이다.

이번 독도의 예처럼 지금도 자취가 뚜렷이 남아 있는 섬들은 가급적 공식명칭을 되찾아주고, 사라진 섬들은 디지털 기술로 복원하여 누구나 가상현실체험을 통해 옛 지도 위를 걸어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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